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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タイトル 집진기 국산화 앞당긴 한성기건의 더스킹 과학기술의 현장
ㆍ作成日 2009-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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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진기 국산화 앞당긴 한성기건의 더스트킹
과학기술의 산업현장
▲ 최경채 사장  ⓒ
경기도 김포에 있는 한성기건(대표 최경채)의 최 사장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또 개인적으로도 2002년도가 정말 남다르다. 온 나라가 축제에 휩싸였던 한/일월드컵이 그 하나의 이유라면 더스트킹(DUST KING) 제1호의 개발이 두 번째 이유가 된다.

2002년도에 최 사장은 조립식 집진기 더스트킹 제1호를 만들어내고 이를 LG화학에 첫 출고하면서 남들보다 더 큰 감격에 휩싸였다.

집진기 제작회사 한성기건이 개발한 모듈화 방식의 집진기 DUST KING(더스트킹)이란 얼핏 들으면 먼지의 왕으로 해석될 수도 있지만 실상은 그 가운데 컬렉터(Collecter)가 빠져 있어서 그렇다.

즉, 먼지를 수집하는 설비의 왕이란 뜻이다. 더스트킹은 출고된 이후 난립하는 국내 집진기 시장을 평정하고 이제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

최 사장은 “산업혁명 이후 공장의 분진 문제는 매우 중요한 사안이 된 지 오래 됐다”고 말하고 “우리가 개발한 더스트킹이 집진기의 방식에 혁명적인 변화를 초래했다기보다는 대량생산, 조립의 간편화, 경비절약, 국산화를 가져왔다는 사실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집진기가 개발되고 공장에서 쓰여진 지 매우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도 불구하고 더스트킹이 인기를 끈 데에는 두 가지 남다른 특징이 있었기 때문이다. 먼저, 기존의 집진기가 상승기류를 이용해 분진을 모은 반면에 더스트킹은 하강기류를 이용한다.

기존의 집진기는 하부에 설치된 에어블로우로 공기를 빨아들여서 상승시키면 공기에 섞여 있던 먼지가 가운데 있는 필터에 흡착된 다음에 털어내는 방식을 쓴다. 하지만 이는 필터가 세로로 세워져 있어서 공기의 와류현상, 재비산의 문제점을 갖고 있었다.

반면에 한성기건의 더스트킹은 위에서 공기를 빨아들여서 가로로 뉘여 있는 필터에 분진이 붙으면 떨어지는 자연낙하방식이다. 이렇게 중력을 이용하면 분진을 바닥에 모으는 데 있어서 와류현상, 재비산 등의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다. 즉, 집진기의 체적 역시 줄어들게 된다.
최 사장은 “집진기는 필터백이 핵심이다”면서 “그 백을 가로로 눕혀놓는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고 밝혔다.

또 하나 더스트킹이 기존의 집진기와 다른 점은 모듈화 방식을 채택, 복잡한 설치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집진기는 특성상 대부분 주문제작방식을 사용하고 있는데 공장의 규모가 각각 다르기 때문에 이에 맞게 설계, 제작 또는 용접, 조립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하지만 한성기건은 모듈화 방식을 채택, 이 문제를 해결해 냈다. 집진기의 용적을 일정 이상 크게 하지 않아도 됨으로써 적은 설치공간으로 많은 용량의 집진처리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이는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공장면적에 크게 구애받는 한국의 제조 기업에 매우 유리한 이점으로 작용했다.

아울러, 한성기건은 48시간 이내에 납품이 가능해짐으로써 제조기업이 절대로 준수해야 할 납기문제를 해결해 공신력을 얻는 데도 성공했다. 이는 한성기건의 성장에 큰 주춧돌이 되었다.

말도 안되는 기계를 최고의 환경설비로

▲ 엘지화학 설치 더스트킹  ⓒ
기계공학을 전공한 최 사장은 70년대에 현대중공업에 입사했다. 이후 그는 당시에 한창 붐을 타던 중동진출을 하게 됐다. 그가 맡은 일은 물이 귀한 사우디에 물을 만들어주는 일이었다.

최 사장은 “바닷물을 증발시켜서 염분을 밑에 모은 다음 위에 찬 수증기를 모아서 물을 만들어내는 일을 했는데 이 담수화 사업에 뛰어들어 제작부터 설치까지 담당하는 일을 했다”면서 “이 때부터 이러한 형태의 장치에 눈을 뜨게 됐는데 마침 한국에서는 환경문제가 불거져나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후 현대중공업을 나와서 창업을 구상하던 최 사장이 집진기 시장에 참여하게 된 것은 매우 자연스런 귀결이었다. 뿐만 아니라 90년도에 최 사장이 한성기건을 설립할 때에만 해도 공장에서 쓰이던 집진기의 용도는 공해를 방지하는 환경집진기가 아니라 우유생산과정에서 날리는 분유가루를 잡아서 다시 생산공정에 투입하는 그런 식의 생산용 집진기가 주종을 이뤘다.

하지만 그 때도 분진문제는 중화학공장에서 매우 심각했고 결국, 환경집진기는 이래저래 군침 도는 개발분야가 아닐 수 없었다.

최 사장은 “PVC 생산공정에서 날리는 분진문제로 매우 고민하고 있었던 LG화학이 우리에게 제의를 해왔는데 기존 집진기보다 우수한 것을 만들어달라는 내용이었다”면서“이러한 대기업이 뒷받침이 됐기 때문에 개발에 나설 수 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1999년에 집진기 개발에 착수한 최 사장은 3년간에 걸쳐서 조립식 집진기를 만들기 위해 외국의 전시회에도 참가하고 거기에 출품된 집진기 사양에 대한 정보를 입수해 철저한 분석작업을 하기도 했다.

이러한 노력이 결실을 맺은 해가 바로 2002년도이었다. 한국에서 월드컵이 한창 열리고 있었을 때에 한성기건은 처음으로 코엑스 전시회에 자사가 만든 조립식 집진기를 선보였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전문가들의 반응은 매우 냉담했다.

그 전시회에 참석했던 교수나 환경설비제작사 대표들은 “한마디로 말도 안되는 기계다”라는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최 사장은 말했다. 그 이유는 딱 하나이었는데 그 당시 그러한 기계를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 사장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집념있게 영업을 펼친 최 사장은 드디어 삼성종합화학(현재 삼성토탈)에 납품하는 개가를 올렸다. 한성기건이 대기업인 LG화학과 삼성토탈에 납품을 했다는 사실은 다른 기업의 철옹성 같은 불신의 장벽을 도미노처럼 부수어나갔다.

이후로 포항제철, 광양제철, 세아제강, 오리온제과 등 한국의 내로라 하는 대기업공장들이 일제히 한성기건의 더스트킹을 주문해온 것이다. 특히, LG화학의 수많은 공장들이 거의 한성기건의 더스트킹을 쓰고 있는데 중국 붐을 타고 상하이에 있는 LG화학중국법인, 석유화학공장 위스컴, 일본 요꼬하마 타이어 등도 그 대열에 합류했다.

지난해 11월4일에 열린 신기술 실용화 촉진대회에서 한성기건은 국무총리 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기도 했다.

기술력 못지 않게 인간관계 중요해

환경설비 업체가 국내에서 자생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IMF 이전 국내에 불어 닥친 환경에 대한 국민적 관심은 환경청을 환경부로 승격시켰고 국내의 모든 언론들이 환경사안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는 국내에 수많은 환경설비업체가 생기는 원인이 됐다. 현재 국내의 집진기 시장에 8천여 개의 각종 크고 작은 집진기 제조업체가 난립하는 사실이 이를 반증한다.

최 사장은 “국내의 환경설비업계는 매우 영세하고 열악하다”며 “우리나라에서 15년 이상 환경업체가 생존할 수 있는 확률은 극히 적다”고 말했다.

그 이유는 기본적으로 기술력의 부족 때문이다. 기술력이 없다 보니까 보증을 못 받아서 자금 확보는 물론 운영의 곤란을 겪게 되고 그것이 계속적으로 반복되는 악순환을 일으켜서 그렇다는 말이다. 이렇게 영세한 환경설비업체가 오히려 공해업체가 된다는 모순이 바로 국내 환경설비업계의 현실이다.

최 사장은 “대기업에 환경설비업체로 납품하려면 입찰을 거치는데 낙찰을 받아도 실사에서 떨어져 하청기업이 못되는 경우도 많다”면서 “한성기건은 기술력에서 인정받은 것은 물론 납기를 준수한 것이 성장의 비결이다”고 밝혔다.

하지만 최 사장은 역경 속에서도 한성기건이 지금까지 꾸준한 성장을 이어온 비결이 반드시 기술력만은 아니다고 말했다. 또 하나의 비결은 바로 인간관계이었다. 이에 대해서 최 사장은 하나의 일화를 하나 들려줬다.

최 사장이 LG화학과 인연을 맺고 그 회사의 공장부지를 빌려서 집진기를 개발하던 시절에 하나의 사고가 있었다. 공장에 질소가스가 유출되어서 근로자 한 명이 질식사를 한 것이다. 당시에 피해자 가족은 재조사를 요구할 정도로 사고의 책임소재가 불분명했다. 하지만 최 사장은 자신이 그 사고의 잘못을 다 뒤집어 쓰고 배상과 장례에 관계된 모든 일을 도맡아서 처리했다.

최 사장은 “나는 비껴갈 수도 있었지만 그랬다가는 내가 이뤄놓은 공든 탑이 모두 날아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서 “총 비용이 5억이나 들었지만 내가 책임졌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LG화학이 책임질 수도 있는 부분을 최 사장이 모두 맡아서 처리한 것이다. 하지만 이는 LG화학과 신뢰관계를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현재 국내외의 LG 화학공장은 거의 모든 공장에서 한성기건의 더스트킹을 쓰고 있다. 굴지의 대기업 LG화학에서 인정받았다는 사실은 다른 회사들의 공신력을 얻는 데도 지대한 공헌을 했다.

최 사장의 굳은 뚝심과 분명한 결단력은 기술력 못지 않게 한성기건 발전에 토대가 된 것이다.

이런 배경하에서 그동안 한성기건은 그런대로 순탄한 행로를 걸어온 편이다. 그러나 이것이 끝은 아니다. 국내 시장에서 집진기가 포화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최 사장은 “현재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면서 ”지난해부터 인도, 유럽에 진출하려고 인증획득작업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조행만 객원기자  


2006.01.22 ⓒScience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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